작가노트

나는 불안을 표현한다. 이는 사람들이 갖는 여러 가지 감정 중의 하나로,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계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발견된 감정이며, 동시에 많은 개인들이 각자의 특별한 계기를 통해 많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적게는 오랜만에 한 번씩 마주치는 감정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불안의 원천이 '자아'라고 말한다. 그는 불안이 '위험의 동종신호'이자 '과거 트라우마의 반복'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불안은 자아가 다가올 트라우마를 피하거나 최소한 대비하기 위한 목적에서 일부러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의 고통을 완화시킨 형태로 기억해 내어 반복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불안이 인간의 출생 이후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어머니로부터의 분리, 거세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의 느낌, 심지어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짐작할 때와 같은 다양한 계기를 통해 나타나며, 이 때에 수반되는 무력감이 불안의 근본적 원인이라 말한다. 따라서 나는 한편으론 무력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중략)

본인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에게 존재하는 원초적 감정들 중 두려움을 연구하고 그 심리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심리 표현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며, 동일한 정신적 문제를 겪는 타인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아가 작품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유희(遊戱)하며, 궁극적으로는 극복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두려움을 표현하는 소재로 두발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생리적, 문화사적 특성을 통해 본 두발의 의미가 두려움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생리적 특성이란, 두발의 세포분열은 새로 생성된 세포가 기존의 세포를 끊임없이 밀어냄으로써 가시적인 길이를 자라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 생성된 세포가 기존의 세포를 대체하는 대부분의 신체와는 다른 것으로, 본인은 이것을 ‘자라난다’와 ‘자라나지 않는다’ 로 구분하고, 양자의 대비를 통해 본인의 내부에서 자라나는 두려움을 비유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두발은 지속적으로 자라나 얼굴과 신체를 덮을 수도 있다. 이것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자라나서 본인의 자아를 덮을 듯이 커져가고 있는 두려움과 형태적, 의미적 유사성을 지닌다. 문화사적으로는, 신에게는 털이 없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신의 모습에 다가서기 위해 제모를 시작한 이집트의 신관이나, 스스로의 문화적 선진성을 알리기 위해 두발을 자르고 면도를 시작한 로마인처럼, 두발을 비롯한 털이라는 것은 버려야 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다른 포유류 동물과 인간 자신을 구분하려는 이성의 작용을 바탕으로 시작된 행위로 추측된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두려움은 결국에는 떨쳐 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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